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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새들은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는다

낭독 연습(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by 공감사이다 2021. 9. 1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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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습니다.
강한 바람에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서입니다.
태풍이 불어와도 나뭇가지가 꺾였으면 꺾였지 새들의 집이 부서지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런 까닭입니다.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까치 부부가 집을 짓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중략)

새들은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습니다. 강한 바람에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서입니다. 태풍이 불어와도 나뭇가지가 꺾였으면 꺾였지 새들의 집이 부서지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런 까닭입니다.

(중략)

인간들은 그런 까치집을 송두리째 파괴해버립니다. 언젠가 화가 이종상 선생께서 까치집이 있는 나무가 뿌리째 뽑혀 이삿짐 트럭에 실려가는 풍경을 그린 '이사'라는 제목의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다. 

(중략)
그래서 '이사'라는 시를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낡은 재건축 아파트 철거작업이 끝나자
마지막으로 나무들이 철거되기 시작했다
아직 봄이 오지 않았는데
뿌리를 꼭 껴안고 있던 흙을 새끼줄로 동여매고
하늘을 우러러보던 나뭇가지를 땅바닥에 질질 끌고
이삿짐 트럭에 실려 가는 힘없는 나무 뒤를
까치들이 따라간다
울지도 않고
아슬아슬 아직 까치집이 그대로 남아 있는 나무 뒤를
울지도 않고

새들이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는 것은 인간이 집을 지을 때 땅을 깊게 파는 것과 같습니다. 건물의 높이에 따라 땅파기의 깊이는 달라집니다. 땅파기가 힘들다고 해서 얕게 파면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습니다. 현재이 조건이 힘들다고 주저앉으면 미래의 조건이 좋아질 리 없습니다.

(중략)

악조건이 완화되기를 기다리기보다 그 악조건을 향해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의 악조건이 내일의 호조건을 만듭니다.

(중략)

누구나 인생이라는 집을 짓습니다. 이 시대도 민주와 자유의 집을 짓습니다. 그러나 그 집을 언제 어떻게 지어야 하느냐는 게 늘 문제입니다. 그 집은 어느 한 때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생의 집이 인생 전체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시대의 집도 시대 전체를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인생의 집도 시대의 집도 평생 동안 지어야 하며 새의 집처럼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새들이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듯이 우리도 고통이 가장 혹독할 때 집을 지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떠한 고통의 비바람이 몰아치더라도 인생의 집도 시대의 집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저의 시 '부러짐에 대하여'도 그러한 집에 대한 제 성찰의 표현입니다.

나뭇가지가 바람에 뚝뚝 부러지는 것은
나뭇가지를 물고 가 집을 짓는 새들을 위해서다
만일 나뭇가지가 부러지지 않고 그대로 나뭇가지로 살아남는다면
새들이 무엇으로 집을 지을 수 있겠는다
만일 내가 부러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기만을 원한다면
누가 나를 사랑할 수 있겠는다
오늘도 거리에 유난히 작고 가는 나뭇가지들이 부러져 나뒹구는 것은
새들로 하여금 그 나뭇가지를 물고 가 집을 짓게 하기 위해서다
만일 나뭇가지가 작고 가늘게 부러지지 않고
마냥 크고 굵게 부러진다면
어찌 어린 새들이 부리로 그 나뭇가지를 물고 가
하늘 놓이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부러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기를 원한다면
누가 나를 인간의 집을 짓는 데 쓸 수 있겠는가


정호승,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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