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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려도 기다려 주기.

일상을 즐기자

by 공감사이다 2020. 3. 25.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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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은하, 은후와 산다.

은후는 8살 남자아이, 체구는 작은편에 달리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이다.

은하는 6살 여자아이, 체구는 작은편에 역할놀이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이다.

은후만 지는 것을 싫어하는게 아니었다. 은하도 지는 것, 밀리는 것을 엄청 싫어한다. 어제 또 깨달았다.

은하는 이른둥이고 다리에 경증의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오래 걷기 어렵고 발이 아프고 불편하다.

길을 걸을때 은하가 느리니 나랑 은하는 느리게 가고, 은후는 앞서가다가 멈춰서 기다려주기도 하고, 우리에게 돌아왔다가 다시 가기도 한다.

나는? 은하랑 천천히 갈때도 있고, 얼른 가야될 일이 있는 경우엔 둘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걸어간다.

사실 나는 좀 답답함을 느낀다.

어제 집으로 가는 길.

은하가 내 가방의 긴 끈을 목에 걸면서, "내가 기차운전하니까 나를 따라와야해."  

라고 말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며 기차놀이 시늉을 조금 했다.

은후가 앞서가니, 은하가 "나를 따라와야지"

하며 삐쳤다. 

은후가 멈추었다가 가니, 은하는 "또 그러네."

하며 울먹였다.

은하는 안가겠다고 스탠드에 앉아버렸다. 은후는 계단을 조금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둘 사이의 중간쯤에 내 가방을 내려두고 고민을 했다.

아, 나는 어찌해야 하나. 사실 은하를 무작정 달래고 싶지 않았다.

은하가 삐치지않고 속마음을 표현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여섯살 우리 은하는 아직 감정표현이 서툰것이니 이해하고 기다려주어야겠지. 일단 내가 화를 안내고 고민의 시간을 가진게 다행이다. 은하의 행동과 마음을 무시하고 싶은 마음도 일어났었다.  

은하를 그냥 기다려줘야 겠다 생각했다.

계단에서 가위바위보 놀이를 했던 게 생각나 은후에게 엄마랑 하자고 제안했다.

은후랑 제일 위에서 시작해서 가위바위보를 해서 계단 내려오기를 했다. 은하는 계단 아래쪽 운동장 스탠드에 있었다.

중간쯤부터는 가위바위보 하나빼기를 하며 즐겁게 하며 내려왔다. 은하가 관심을 보이며 구경하고 있었다. 가끔씩 은하에게 말도 걸어주었다. 

다 내려오니 은하도 가위바위보 계단 올라가기를 하고싶은 눈치였다. 셋이 하자고 하니, 은하가 내가 계속 지면 어떡해. 하며, 엄마랑 둘이 하면 할건데, 오빠랑 하면 안할꺼야. 라고 했다.

엄마랑 둘이 하자고 해서 재밌게 가위바위보를 했다. 나는 열심히 티안나게 가위바위보를 져주었다. 은하가 신이나서 올라가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은후는 둘이한다고 해서 아쉬워했지만, 이긴사람이랑 자기랑 결승전하자고 하며, 혼자 난간을 걷기도 하며 놀았다.

아이 둘 엄마는 이렇게 성장하나보다.

두 아이로 인해 너무 힘들다 싶고, 하나만 낳을걸 하는 아쉬움도 생기기도 하지만 매일 무언가 배우는 게 생긴다.

 

집에서 간식 먹고 마트에도 다녀왔다.

은후는 킥보드를 타고, 은하는 세발 자전거를 타고, 은하에게 자전거 연습도 시켜주고 걷기도 하고 운동시켜주고 싶은 의도였다. 페달을 밟는 것부터 힘 조절이 서툰 은하를 밀어주며 나도 힘들었다. 그렇지만 은하가 자전거타는 요령이 조금씩 붙고 성취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뻤다.

오는 길에는 은하가 고른 칸쵸를 자전거 앞 바구니에 넣어서 타고 왔다.

깜깜해져서 쪼금 무섭긴 했지만 우리는 즐겁게 돌아왔다. 현리광장 옆에 있는 운동기구에서 조금 놀기도 하고서.

나는 깜깜한 것은 무섭지 않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서 깜깜한 길도 무섭지 않고 벌레같은 것도 별로 징그럽지 않다.

무서운 사람이 나타날까봐 무서운 것이다. 아이둘을 데리고 있는 책임감에 아이들이 다치거나 유괴되면 어쩌나 하고.

학교정문을 통과해서 운동장을 지나오는데 밤하늘이 참 예뻤다. 은후랑 은하가 별을 가리키며 별이 3개야, 저별이 제일 예쁘다 하는 말들이 참 듣기 좋았다. 엄마도 별 보는 것을 좋아한단다.

보건선생님이 초과근무를 하셔야하는데 세콤카드가 없으시다며 걱정하셔서 나가실때 내가 잠궈드린다고 해서, 

은후에게, 우리 이따가 별보러 다시 나올까? 물어보았다.

아이들은 엄마랑 있어서 밤길도 무섭지 않나보다.

우리 초등학생이던 시절, 학교마다 전설 하나둘은 꼭 있어서 늦은 밤의 학교를 무서워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학교 전설은 이런 거였다. 철봉 밑에 아이 무덤이 있다거나, 세종대왕 동상이 밤마다 움직인다던가 , 책읽는 동상의 책장이 넘겨져 있다거나 하는 이야기였다.

이 글을 쓰다보니 아이들이 어둠을 무서워 하지 않는 것은 때묻지 않고 순수해서 인것 같다.

밖에서 듣는 무서운 이야기, 유령이야기, 강도이야기 같은 것을 거의 접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나는 아직 기다림이 어렵다.

그렇지만 은후를 보며 배운 점은, 기다리기 힘들땐 소리높여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기다려줄땐 정말 잘 기다려준다는 점이다. 은하의 장애로 불편함은 있지만 그것이 서로에게 짐이 되거나, 말하지 않고 무작정 기다려 주는 건 아니었으면 좋겠다.

은하의 장애가 우리가족에게 자연스럽게 느껴지게끔 하고 싶다. 조금씩 친척들에게, 친구들에게로 퍼져나가도록.

걷기와 운동을 통해 조금씩의 성취감을 느껴가는 은하를 응원해주어야겠다.

함께 지내는 가족으로서 불편함을 감내하는게 아니라, 엄마도 기다리기 힘들때가 있어, 라고 투정도 부리고 싶다. 

그리곤 든든하게 곁을 지켜주는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때론 삐치고, 다투고, 화해하고, 고마워하고, 이렇게 아이들이 잘 커주고 있음에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아, 코로나때문에 미사도 못가고, 성경쓰기도 밀리고, 반성이 든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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