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당위적 삶은 주어진 역할에 몰입하게 한다. 딸은 딸로서, 아들은 아들로서, 부모는 부모로서, 교사는 교사로서…. 이렇게 역할에 과몰입하면 의무만 남고 오롯한 ‘나’로서의 실존적인 존재는 멀어진다. ‘나여야만 하는 나’가 가질 수 있는 감정만 허용하게 된다. 그래서 모든 감정을 이해하고 수용하지 못하고 한번 걸러진 감정만 용인한다.
그리고 이처럼 당위적 삶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개인은 마음을 다쳐 아파도 상담을 받거나 정신과에 가기를 더 꺼리는 경향이 있다. 남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볼까 봐 더 아프고, 또 그런 나를 향해 남들은 “그런 것쯤은 의지로 극복해야 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며 또 한 번 상처를 낸다.
‘이런 감정을 표현하면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부터 고민하는 모습은 우리가 겪었던 체면 문화와 당위적 삶이 결합된 결과이다. 완벽한 타자 지향적 삶이다. 나로서 살아가기는 당위적 삶을 끊어낸 후에야 가능하다. 이러한 조건이 선행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해서 감정을 억압하고, 풀리지 않는 감정으로 인해 스트레스와 번아웃을 겪을 수밖에 없다. 급기야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채 정신이 병드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고유 영역을 가진 존재로서의 자기만족과 자기인식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을 때 나는 ‘진정한 나’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런 다음에야 온 마음으로 기뻐할 수 있고, ‘있는 그대로의 나’와 나의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아포리아aporia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있어야 할 것’이 아닌 ‘이미 있는 것’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게 된다.
나는 나였던가, 주입된 나로 살았던 건 아닌가, 누구의 기준인지도 모르면서 그 당위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 살지는 않았나 생각해봐야만 한다. 진정한 나로 행복하고 싶다면 말이다.
조우관, <도둑맞은 감정들>
★내 생각
당위적 삶에서 벗어난 지금은 나는 한결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졌다.
신랑과 공감대화도 나눌 수 있게되어 기쁘다.^^ 신랑도 조금씩 당위적, 의무적 삶을 내려놓고 좀더 자신의 바람에 가깝게 살고있는것 같다.
★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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