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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매필9기] 26일차. 울음 자체는 회복을 향한 갈망의 표현이다. <도둑맞은 감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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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사이다 2021. 5. 26.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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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크리스마스 캐럴 <울면 안 돼>의 원곡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가사의 일부이다. 가사에 따르면 산타 할아버지는 누가 착한지, 나쁜지 알고 있고 리스트를 만들어 그것을 두 번이나 체크한다고 한다. 울지도 말고, 토라지지도 말라고 하면서 말이다. 착한 아이와 나쁜 아이에 대해 언급한 후 울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울음을 나쁜 행위로 인식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 캐럴이 이런 끔찍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도 모른 채 신나게 따라 불렀다. 심지어 한국어 가사에는 장난치는 아이도 산타 할아버지가 모두 알고 계신다고 말한다.


울지도, 장난치지도, 토라지지도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어른 입장에서 키우기 편한 아이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울면서 고집을 부려 피곤하게 하거나, 장난쳐서 시끄럽게 하거나, 토라져서 성가시게 하는 것은 모두 어른을 힘들게 하는 조건이다. 아이들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이런 특성을 없애야지만 어른들이 편해진다. 여기엔 어린이는 어른과 대등한 존재가 아니라, 어른에게 지배받는 존재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권위주의적이면서도 폭력적이다. <이퀼리브리엄>에서 독재정부가 시민을 통제하기 수월하도록 모든 감정을 소멸하려고 했던 것처럼.


울음은 아이의 정체성이다. 인간은 모두 울면서 태어났고, 말을 하기 이전까지 울음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자 생존 기제였다. 울어야만 자신의 감정을 이후에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지 배울 수 있고, 다른 감정도 민감하게 느낄 수 있다. 울음에는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으며, 울음은 슬픔, 분노, 짜증, 상실감, 환희 등의 발현이다.


우는 행위가 차단된 아이가 그 어떤 감정을 마음 놓고 표현할 수 있을까? 나의 울음에도 자유롭지 못했던 아이가 다른 이의 울음에 공감할 수 있을까? 사회적 감수성이 풍부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을까? 의도하진 않았더라도 울음을 참으라는 메시지가 우울감, 불안, 열등감, 분노, 공포 등의 감정도 모두 참으라는 메시지로 확장되지는 않았을까?

인간에게는 회복하려는 본성이 있으며, 울음 자체는 회복을 향한 갈망의 표현이다. 감정을 느끼는 것이 혼란스러우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를 알게 된 영화 속 주인공이 회복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영화가 막을 내리는 것처럼, 어른들이 이제는 ‘울어도 돼, 울어도 돼’로 가사를 바꿔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우는 사람에게 울지 말라는 말은 아무런 위로의 기능도 하지 못한다.


울음은 감정의 찌꺼기를 날려주는 가장 강력하고도 역동적인 행위이다. 그리고 다른 이의 슬픔 앞에서 나의 진심과 공감을 전달해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만약 당신이 부모라면 아이에게 프로지움 약물을 주입하지 않기를, 만약 당신이 지금 울지 못하는 어른이라면 독살된 울음의 해독제를 찾기를 바란다.

조우관, <도둑맞은 감정들>

★내 생각

오늘의 외울 문장!!( '오늘의 문장'에서 외울 문장으로 바꿨다. 외우고 실천까지!!)

울음 자체는 회복을 향한 갈망의 표현이다.

아이의 울음을 대할 때, 요즘은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들긴하다. 떼를 쓸때도 '무언가 이유가 있으니 그렇지, 오죽하면 그럴까' 하고 먼저 감정을 인정하자.


★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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