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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매필10기] 27일차. 지독한 집순이에게 깃든 간절한 여행자의 영혼이라니, 모두가 어느 정도는 다른 자아를 데리고 살지만, 너의 경우엔 양쪽 다 유난이지.<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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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사이다 2021. 6. 26.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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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끝나고, 다시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이야. 치앙마이 길거리 매대에서 신중하게 골라, 기세 좋게 흥정한 너의 날염 바지는 무채색의 겨울옷들 속에서 지나간 유행가처럼 펄 럭펄럭 노래하고 있어. 바지를 좀 갈아입고 올 걸 그랬나 머쓱해하는 순간, 여행 가방이 컨베이어 벨트에 모습을 드러내지. 반짝이던 모든 것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빛을 잃어가.평소에도 잘 할 수 있겠다 싶었던 반지도 부자연스럽고 대책 없는 취향으로 판명 나지. 보물이라도 될 것처럼 꽁꽁 챙겨온 기념품도 무거운 짐짝으로 취급받을 뿐이야. 모든 것에 '잊어라'라는 선고가 내려지지. 떡진 머리와 몽롱한 정신과 천근만근인 몸은 그 선고를 이행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야. 얼른 집에 가서 씻고 편하게 자고 싶다는 욕망만이 간절할 뿐이야.

공항 밖으로 나서면 갑자기 무대 조명이 꺼지고 관객석에 형광등이 켜진 것 같은 그 돌연한 환기. 진짜 계절이 발톱을 세우고 너의 얇은 날염 바지를 할퀴거나, 대책 없이 두꺼운 니트 사이로 습기가 촘촘히 새겨지지. 어디론가 계속해서 떠나는 버스들과 버스에 분주히 짐을 싣고 더 탈 사람 없냐고 소리를 지르는 아저씨들, 빠르게 티켓을 사고 줄을 서는 사람들, 그 사이에 오차 없이 편입을 해야 해. 그것이 너의 첫 일상 적응 훈련. 짐을 싣는 아저씨가 건네주는 티켓은 잃어버리지 않도록 단단히 쥐고 있다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벨을 누르고 운전기사분에게 신속하게 건네야 해. 이 시스템은 결코 누구를 봐주지 않거든. 빠르게, 정확하게오차 없이, 여 기에 막 끝난 여행을 돌아볼 여유는 없어.

이상한 일이지? 집에 들어오는 순간, 그 어떤 여행지에서의 파도보다 더 큰 안도감이 밀려온다는 건. 어떤 풍경 앞에서도 내쉰 적 없는 가장 편안한 숨을 집에서 내쉰다는 건. 여행 가방의 작은 바퀴가 기억하는 그 많은 낯선 길들과 운동화 바닥이 기억하는 각양각색의 감동을 너는 내팽개쳐버리지. 아무래도 상관없지. 무사히 집에 돌아왔으니까.

집에 대한 사랑이 유난한 너에게 지금 그 사실보다 더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지. 지독한 집순이에게 깃든 간절한 여행자의 영혼이라니, 모두가 어느 정도는 다른 자아를 데리고 살지만, 너의 경우엔 양쪽 다 유난이지. 집순이도 한 고집하고, 여행자도 결코 목소리를 죽이지 않지.

코로나로 집에 있어야만 한다는 선고를 받았을 때 가장 안도 한 건 집순이였고, 가장 당황한 건 여행자였지. 둘 다 네 안에서 소리를 질렀잖아. 집순이는 환호를, 여행자는 절규를.


김민철,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329p

★내 생각

작가님의 솔직담백한 글에 나도 공감하며 읽었다.

코로나로 인해 이번에 더 절실히 알게 되었다. 나에게 '집순이' 기질과 '바깥에 쏘다니는' 기질이 둘 다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들과 밖에서 나가 노는 것도 좋고, 텃밭에 가는 것도 좋고, 내린천 냇가에 나가는 것도 참 좋다.

그리고 필사라는 취미와 블로그를 하는 취미도 생겨서 좋다.

 

여행은 가고싶은 곳을 점찍어 두고 상상만 해봐도 좋다. 마스크를 쓰고라도 가고싶다. 되도록이면 마스크 없이 가고싶지만 말이다.ㅜㅜ

꼭 멀리갈 필요는 없다. 곳곳에 국내에 여행갈곳은 많다. 누구와 함께갈까? 혼자 갈까? 이것만 선택하고 맘껏 즐기면 된다.^^

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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