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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매필10기] 25일차~26일차. 제게 좋았던 걸 건네주고, 그걸 상대가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는 그 사람 몫으로 남겨놓는 담백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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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사이다 2021. 6. 25.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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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방 추천해드려.”

"마르방? 거기 너무 아무것도 없어서……….”

"없긴 왜 없어. 당신은 마르방이 별로였어?"

"아니, 너무 좋았지. 근데 좋아하실까?"

"응. 좋아하실 것 같은데?"

추천과 선물의 공통점이 있죠. 둘 다 상대의 마음에 꼭 맞길 원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 다만 선물은 오롯이 상대의 취향만을 생각하면 되죠. 내 취향은 거기에 의도치 않게 끼어드는 것. 슬쩍 스며드는 것. 핵심은 상대의 취향이잖아요.

근데 추천은 좀 이야기가 다르죠. 내게 좋았던 것 중 상대의 마음에 꼭 맞는 것을 골라내는 과정을 거쳐야 하잖아요. 내 취향과 상대의 취향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바로 그 지점을 낚아채야 하죠. 그러다 보니 추천을 할 땐 제가 가진 것이 왜 이리 가난해 보이는 건지요. 저의 확고한 취향이라 믿었던 것들이 저의 좁고도 완고한 우주로 순식간에 돌변하죠. 이토록이나 좁은 경험들 중에 다시 상대에게 꼭 맞는 걸 골라야 한다고? 그건 때론 도달할 수 없는 목표처럼 보여요.

물론 원하는 건 담백한 추천이죠. 그러니까 제게 좋았던 걸 건네주고, 그걸 상대가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는 그 사람 몫으로 남겨놓는 담백한 추천. 소금만 툭툭 쳐서 먹든지, 양념장을 후루룩 섞어서 먹든지 혹은 먹다 남기든지 그 모두를 그 사람 몫으로 남겨두는 그런 추천을 하고 싶은데 저에게 아직 그 경지는 너무 어렵습니다. 저의 좋음이 꼭 상대방의 좋음으로 연결되었으면 하거든요. 그 도시에 대한 저의 진심을 상대의 손에 꼭 쥐여주고만 싶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마르방은 모험이었어요. 고풍스러운 분위기도 아니고, 좋은 호텔이 있는 곳도 아니고,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너무너무 작잖아요. 이토록 작은 곳에 팀장님에게 꼭 맞는 행복이 있을까? 제 고민을 깨뜨려준 건 의외 로 오래전 책 경험이었어요. 역시나 책은 도끼라니까요.

기억하시나요? 그때 밀란 쿤데라부터 줄리언 반스와 플로베르까지 다양한 작가들의 책에 각자 푹 빠졌다가 돌아와 각자의 탐험기를 공유했었잖아요. 서로 추천하고, 읽고, 좋았던 부분을 정리해서 주고받았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그 시간이 특히 즐거웠던 이유는, 분명 같은 책을 읽었지만 '각자'의 책이 되어버렸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팀장님과 제가 줄 친 부분은 달라도 달라도 그렇게나 다를 수 없었으니까요. 누가 보면 완전히 다른 책을 발췌한 줄 알았을 거예요. 그토록 다른 밑줄 취향을 뽐내면서도 우리 대화는 한결같았잖아요.

"좋지?"

"너무 좋아요!"

마르방 앞에서 망설이다 그때의 경험을 되새겼어요. 제가 너무 좋아하는 그곳이 팀장님의 방식으로 좋을 수 있을 테니까. 마침내 저도 담백한 추천을 해보기로 결심한 거죠.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마르방이 제 방식으로 너무 좋았거든요.


김민철,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10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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