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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매필13기] 26일차. 화내지 않는 커뮤니케이션도 가능하다는 사실이네. 언어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지. 말의 힘을, 논리적인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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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사이다 2021. 9. 25.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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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 분노란 커뮤니케이션의 한 형태고 아울러 화내지 않는 커뮤니케이션도 가능하다는 사실이네. 우리는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나를 받아들이게 할 수 있네. 경험을 통해 그것을 알게 되면 자연히 분노의 감정도 나오지 않을 걸세.

청 년 : 하지만 분명 오해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빌미로 시비를 걸어오거나 모욕적인 말을 하는데도 화를 내서는 안 됩니까?

철학자 :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군. 화를 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분노라는 도구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는 걸세.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참을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분노 이외의 유용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걸세. 그래서 “나도 모르게 욱해서”라는 말이 나오는 거고. 분노를 매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거지.

청 년 : 분노 이외의 유용한 커뮤니케이션이라면…….

철학자 : 우리에게는 말이 있지 않나. 언어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지. 말의 힘을, 논리적인 말을 믿는 걸세.

청 년 : ……확실히 그걸 믿지 않으면 이 대화도 성립하지 않겠죠.

철학자 : 권력투쟁에 관해 한 가지 더 일러둘 말이 있네. 아무리 자신이 옳다고 여겨도 그것을 이유로 상대를 비난하지는 말게. 이것이 많은 사람이 빠지는 인간관계의 함정이지.

청 년 : 왜죠?

철학자 : 인간관계에서 ‘나는 옳다’고 확신하는 순간, 권력투쟁에 발을 들이게 되네.

청 년 : 옳다고 생각만 했는데도요? 아니, 과장이 너무 심하십니다!

철학자 : 나는 옳다, 즉 상대는 틀렸다. 그렇게 생각한 시점에서 논쟁의 초점은 ‘주장의 타당성’에서 ‘인간관계의 문제’로 옮겨가네. 즉 ‘나는 옳다’는 확신이 ‘이 사람은 틀렸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는 ‘그러니까 나는 이겨야 한다’며 승패를 다투게 된다네. 이것은 완벽한 권력투쟁일세.

청 년 : 으음.

철학자 : 애초에 주장의 타당성은 승패와 관계가 없어. 자네가 옳다고 믿는다면 다른 사람의 의견이 어떻든 간에 이야기는 거기서 마무리되어야 하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권력투쟁에 돌입해서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려고 하지. 그러니까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곧 ‘패배를 인정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는 거라네.

청 년 : 맞아요. 그런 측면이 있죠.

철학자 : 지고 싶지 않다는 일념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결과적으로 잘못된 길을 선택하게 되지. 잘못을 인정하는 것, 사과하는 것, 권력투쟁에서 물러나는 것. 이런 것들이 전부 패배는 아니야. 우월성 추구란 타인과 경쟁하는 것과는 상관없네.

청 년 : 승패에 연연하면 바른 선택을 할 수 없다는 뜻인가요?

철학자 : 그래. 흐릿한 안경을 쓰면 눈앞의 승패밖에 보지 못하고 길을 잘못 들게 되지. 경쟁이나 승패의 안경을 벗어야 비로소 자신을 바로 보게 되고,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걸세.


기시미 이치로, <미움받을 용기>


★내 생각
분노란 커뮤니케이션의 한 형태고 아울러 화내지 않는 커뮤니케이션도 가능하다는 사실이네.
우리는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나를 받아들이게 할 수 있네.
경험을 통해 그것을 알게 되면 자연히 분노의 감정도 나오지 않을 걸세.

분노 이외의 유용한 커뮤니케이션 = 공감대화다!
화를 내지만, 똑똑하게 화를 내는 것. 그게 공감대화다. 나의 욕구(바람)와 느낌을 전달하여 원하는 방향을 이야기하고 현재 나의 마음을 인정하고, 상대도 존중하는 것.
전보다는 화를 자주 내진 않는다. 하지만, 화내고 후회할때도 여러번 있었다. 아이들에게 버럭보다, 비폭력으로 외치고 나의 바람과 느낌을 아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 나 자신에게 집중!! 꼭 멈추었다가 반응하자.

★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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