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아바매필13기] 27일차. 과거가 보이는 것 같고, 미래가 예측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자네가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지않고 희미한 빛 속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일세.<미움받을 용기>

매일 필사하기

by 공감사이다 2021. 9. 27. 05:07

본문

★본문

철학자 : 자네가 극장 무대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게. 그때 극장 전체에 불이 켜져 있으면 객석 구석구석까지 잘 보일 거야. 하지만 자네에게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면 바로 앞줄조차 보이지 않게 돼.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라네. 인생 전체에 흐릿한 빛을 비추면 과거와 미래가 보이겠지. 아니,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겠지. 하지만 ‘지금, 여기’에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면 과거도 미래도 보이지 않게 되네.

청 년 : 강렬한 스포트라이트요?

철학자 : 
그래. 우리는 좀 더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야 하네. 과거가 보이는 것 같고, 미래가 예측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자네가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지 않고 희미한 빛 속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일세. 인생은 찰나의 연속이며, 과거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아. 자네는 과거와 미래를 봄으로써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려하고 있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든지 간에 자네의 ‘지금, 여기’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미래가 어떻게 되든 간에 ‘지금, 여기’에서 생각할 문제는 아니지.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고 있다면 그런 말은 나오지 않을 걸세.

청 년 : 하, 하지만…….

철학자 : 프로이트의 원인론에 서게 되면 인생을 원인과 결과로 구성된 하나의 큰 이야기로 보게 된다네. 언제 어디에서 태어나서, 어떤 어린 시절을 보내고, 어떤 학교를 나와서 어떤 회사에 들어갔는가.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고, 미래의 내가 있다고 하는 식으로 말이야. 확실히 인생을 이야기에 비유하면 재미있고 이해하기도 쉽지. 그래봤자 그 이야기 끝에는 ‘흐릿한 미래’가 보일 뿐이야. 그럼에도 그 이야기에 따라 살려고 하지. 내 인생은 이러니까 이대로 살 수밖에 없다, 나쁜 것은 내가 아니라 과거인 환경이다. 이렇게 과거를 들먹이며 탓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 면죄부를 주는 걸세. 인생의 거짓말과 다름없지. 하지만 인생이란 점의 연속이며, 찰나의 연속이다. 그것을 이해한다면 더는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을 걸세.

청 년 : 그런 식이라면 아들러가 말한 생활양식도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까!

철학자 : 생활양식은 ‘지금, 여기’에 관한 이야기이며, 자신의 의지로 바꿀 수 있다네. 직선처럼 보이는 과거의 삶은, 자네가 ‘바꿀 수 없다’는 결심을 번복한 결과로 그렇게 보이는 것에 불과하지.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인생은 완전히 백지 상태에 놓여 있네. 쭉 뻗은 레일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이야기는 없어.

청 년 : 하지만 그건 찰나주의(순간주의), 아니 보다 더 나쁜 향락주의일 뿐입니다!

철학자 : 그렇지 않아. ‘지금, 여기’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는 것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진지하고 빈틈없이 해나가는 것을 뜻한다네.


기시미 이치로, <미움받을 용기>

 

★내 생각

'지금, 여기'를 좀더 진지하게 살아야 한다. 

지금에 몰입해서 살아야한다.

자각몽을 항상 꾸는 듯이 산다는 전혜진 작가님의 말씀이 떠오른다.('메타인지'라는 용어도 떠오른다)

내가 어떤걸 원하고 어떤걸 느끼는지 계속하여 자각하고, 내가 원하는대로!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야겠다.

★필사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