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아바매필10기] 9일차.

매일 필사하기

by 공감사이다 2021. 6. 9. 10:06

본문

★본문

무슨 대단한 깨달음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고통이나 기쁨의 본질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요즘처럼 더운 날에는 오후 6시가 지나도 햇살은 무척 뜨겁다. 에어컨 이 빵빵 나오는 카페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노라면 걸어 다니는 일 자체가 인생의 고난을 상징하는 듯하다. 하지만 바로 그런 순간에 나는 달리기를 해야만 한다. 일부러 고통을 찾으려는 마음이 있는 건 물론 아니다. 내가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오후 6시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그때뿐인데, 햇살이 뜨겁다고 해서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6시의 달리기를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우선 두려움과 고통은 다르다는 점이다. 달리기 직전까지가 힘들까 봐 두려운 거지,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두려움 같은 건 사라진다. 더 힘들어질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도 사실 더 힘들어지면 또 사라진다. 반면에 고통은 순수한 경험이라 미리 겪을 수 없지만 분명히 거기 존재 한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바깥에 존재한다. 그래서 달리는 내내 열기로 인한 그 고통은 나를 둘러싸 놔주지 않는다. 나는 온몸의 감각을 모두 동원해서 그 고통을 맛볼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이다. 미칠 것처럼 덥고, 목이 마르다. 숨이 차고 다리 근육이 팽팽해진다. 나무 그늘 아래를 달리면 시원해지고, 거기를 벗어나면 다시 덥다. 계속 이런 식이다. 매 순간 나는 뭔가를 느낀다. 힘들기 때문에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걸 세세하게 느끼는 한에는 시간이 한없이 길어진다. 단숨에 계획한 거리를 달려 오늘의 달리기를 끝내면 좋겠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기 때문에 시간은 길어지는 셈이다. 그 순간의 느낌으로 말하자면, 내가 늙어 죽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다.

나는 여기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달리기를 끝낼 때마다 나는 어마어마한 만족감을 느끼는데 그건 단지 계획대로 달렸기 때문이 아니다. 달리는 동안에는 나를 둘러 싼 세계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그 사실 때문이다.

희로애락과 같은 인간의 감정에서 초월한, 더없이 편안한 상태에서 달리는 사람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그건 잠을 자면서 달린다는 소리다. 마찬가지로 잠을 자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틱낫한 스님이 전하는 베트남의 속담은 다음과 같다. "공동체를 떠난 수행자는 파괴될 것이다. 산을 떠난 호랑이가 인간에게 잡히듯이." 내 식대로 고치자면, 삶의 수많은 일들을 무감각하게 여기는 사람은 순식간에 노인이 될 것이다. 기뻐하고, 슬퍼하라. 울고 웃으라. 행복해 하고 괴로워하라.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내 생각

★필사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