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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8일차. 소설을 읽는 진짜 이유는 헤매기 위해서입니다. 김영하의《읽다》

나의 성장일기(주제 없이 자유롭게 쓰기)

by 공감사이다 2021. 3. 5.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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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소설을 읽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헤매기 위해서일 겁니다. 분명한 목표라는 게 실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이상한 세계에서 어슬렁거 리기 위해서입니다. 소설은 세심하게 설계 된 정신의 미로입니다. 저멀리 어슴푸레 보이는 성을 향해 길을 따라 걸어가지만 우리는 쉽게 그 성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대신 낯선 인물들을 만나고 어이없는 일을 겪습니다.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을 경험하기도 하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문제를 곰곰이 짚어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서점 서가에 꽂힌 그 수많은 책들 중에서 우리가 굳이 소설을 집어드는 이유는, 고속도로로 달리는 것에 싫증이 난 운전자가 일부러 작은 지방도로로 접어드는 이유와 비슷합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의 이성은 줄거리를 예측하고, 작가의 의도를 가늠하고, 인물의 성격을 있는 현실의 누군가와 비교하기도 합니다. 반면 우리의 감성은 작가가 써놓은 적확하고 아름다운 문장에 탄복하기도 하고, 예리한 인물 묘사에 공감하기도 하고, 주인공이 처한 고난에 가슴 아파하기도 합니다. 이성과 감성이 적절히 균형을 이룰 때, 우리의 독서는 만족스러운 경험이 됩니다. 때로 이성에 이끌렸다가 때로 감성에 이끌렸다가 하면서 우리의 정신은 책 속에 구현된 그 이상한 세계를 점차 이해해가기 시작합니 다. 그리고 마침내 그 세계의 일원이 됩니다.

그러므로 좋은 독서란 한 편의 소설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작가가 만들어놓은 정신의 미로에서 기분좋게 헤매는 경험입니다. '아, 왠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은 정말 재미있어. 인물들은 생생하고, 사건들은 흥미롭고, 읽는 내내 정말 흥분되더군. 주인공은 지난밤 꿈에도 나왔어.'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어차피 우리가 알아낸 모든 것은 작가가 꾸며낸 허구에 불과합니다. 그 모든 요소와 장치는 독자로 하여금 작가가 창조한 그 세계에서 멋진 경험을 할 수 있게 제공된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는 소설을 읽음으로써 뭔가를 얻습니다. 그런데 그 뭔가를 남에게 설명하기도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경험한 미로와 타인이 경험한 미로가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화폐경제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교환이 불가능한 것들은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소중한 것은 교환이 불가능합니다. 부모가 준 사랑을 계량화해서 자식이 되갚을 수 는 없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타인을 도운 경험이 똑같은 형태로 내게 돌아오지도 않습니다.

소설을 읽음으로써 우리가 얻은 것은 고유한 헤맴, 유일무이한 감정적 경험입니다. 이것은 교환이 불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한 편의 소설을 읽으면 하나의 얇은 세계가 우리 내면에 겹쳐집니다. 저는 인간의 내면이란 크레페케이크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상이라는 무미건조한 세계 위에 독서와 같은 정신적 경험들이 차곡차곡 겹을 이루며 쌓이면서 개개인마다 고유한 내면을 만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의 기업들은 우리를 소비자라 부릅 니다. 구글 같은 기업은 우리를 빅데이터의 한 점으로 봅니다. 정당은 우리를 유권자로 여깁니다. 우리의 개성은 몰각되고 행위만이 의미 있습니다. 우리가 더이상 물건을 사지 않고, 인터넷에 접속하지도 않으며, 투표에도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있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몰개성적 존재로 환원되는 것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 안에 나만의 작은 우주를 건설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의 우주가 빛나는 별과 행성, 블랙홀 등으로 구성 되어 있다면, 크레페케이크를 닮은 우리의 작은 우주는 우리가 읽은 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것들이 조용히 우리 안에서 빛날 때, 우리는 인간을 데이터로 환원하는 세계와 맞설 존엄성과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생각

소설을 읽는건 헤매기 위해서라니...작가의 통찰과 재미있는 비유에 고개를 끄덕이게된다.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고, 나만의 정신적 미로를 여행하며 헤매면서, 나만의 내면을 만드는 것이구나.

'그림책 읽는주는 엄마' 카페의 "헤맴"님이 떠오른다. ^^ 세상에, 이런 유일무이한 닉네임이라니 하면서 놀랐었고, 그분의 책읽는 이야기, 아이들과의 육아이야기에 푹 빠져 읽던 일도 떠오른다. 소설과 이야기를 좋아하는 헤맴님이여서 '헤맴'이라고 닉네임을 정하셨을까? 김영하님의 이 책을 읽고 너무 좋아서 '헤맴'으로 하셨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나도 소설을 읽으며 많이 헤매야겠다. 책속에서 (그리고 실제로도)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대화나누고, 감정적 경험을 통해 내 내면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야지.

 

★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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