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벵골 지역의 통치자 크리슈나찬드라 왕에게 어느 날 낯선 이방인이 한 사람 찾아왔다. 머리에 커다란 터번을 쓰고 꼬부라진 팔자수염을 한 남자는 왕 앞에 서자마자 자신이 매우 학식 있는 사람이며 여러 언어를 할 줄 안다고 주장했다. 왕의 호기심을 눈치챈 그는 『바가바드기타』와 『우파니샤드』를 비롯한 여러 경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며 고대 언어인 산스크리트어에 대한 실력도 과시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점성학에도 전문 지식이 있는 사람이었다.
지식인을 편애하고 후원해 온 크리슈나찬드라 왕은 의심스러워하는 대신들의 질투 어린 시선을 물리치고 그 자리에서 이방인을 대신으로 임명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그가 매우 지적이며 많은 언어에 능통한 자라는 사실이 여실히 증명되었다. 그는 토론 주제에 따라 다양한 서적을 인용하고 뛰어난 논리를 전개하면서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 여러 나라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들에 대한 기억력도 모두가 경탄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이방인에게는 한 가지 못내 수상쩍은 점이 있었다. 자신의 가족이나 출생지에 대해 물으면 화제를 돌리거나 수염을 꼬아 댈 뿐 전혀 밝히지 않았다. 옷차림이나 말투만으로는 그의 국적을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웠다. 행동 자체가 그만큼 세련되고 국제적이었다.
왕궁 전체가 이 이방인에게 흥미를 느끼고 그가 본래 어느 왕국의 어느 지역 출신인지 알아맞히는 데 열을 올렸다. 특히 그의 능력을 시기한 대신들은 이 낯선 자가 갑자기 왕궁에 나타난 진짜 연유가 수상쩍다며 의심하는 말들을 왕의 귀에 속삭였다. 북인도 전역을 장악한 이슬람 정부의 첩자인지 모른다고 의심하는 이도 있었다.
수군거림에 지친 왕은 대신들에게 근거 없는 비방을 중단하고 직접 이방인의 출신 배경을 알아내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그가 병법과 술책에도 뛰어난 인물인지라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대신들은 그의 본색을 알아내는 데 실패했다.
모든 시도가 허사로 돌아가자, 왕은 기발한 생각으로 유명한 궁정 익살꾼 고팔을 불렀다.
왕이 지시했다.
“고팔, 여기 있는 이 대신들은 잘난 체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으면서도 나의 새로운 대신이 어느 지역 출신인지 알아내는 데는 실패했네. 그 단순한 일조차 말이네. 그러니 그대가 그의 정체를 알아맞혀 보게.”
잠시 생각한 후 고팔이 대답했다.
“하루만 시간을 주시면 지시하신 대로 그의 근본을 밝혀내겠습니다.”
곧바로 이방인의 소재를 찾아 나선 고팔은 그 이방인이 다음 날 궁중 회의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가 오기 전에 왕궁 입구로 가서 커다란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이윽고 이방인이 정문에 나타나 왕궁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 순간 고팔이 기둥 뒤에서 뛰어나와 전속력으로 그에게 몸을 부딪쳐 그를 나동그라지게 만들었다. 분홍색 터번을 쓰고 팔자 수염을 매만지며 우아하게 등장하다가 갑자기 바닥에 자빠진 이방인은 고팔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지방 사투리로 소리쳤다.
“이 멍청한 놈이 눈이 멀었나, 아니면 머리가 돌았나? 사람이 오는 게 안 보여?”
고팔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는 단지 당신이 어디 출신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오. 이제 그것을 알게 되었소. 말투를 들으니 당신은 오리사(동인도 벵골 지역에 인접한 주) 출신이군. 사람은 화가 나거나 감정적이 되거나 몹시 다급하면 자신도 모르게 본성이 드러나 자기 본래의 언어로 말하게 되거든.”
이방인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고팔은 왕에게 가서 그동안 비밀로 감춰져 온 이방인의 출신을 고하고 사실을 밝혀낸 과정을 들려주었다. 왕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팔의 뛰어난 재치를 칭찬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아는 것처럼 연기하고, 지적이고 교양 있고 세련되게 행동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우리의 본성, 본래 언어는 무엇인가? 화가 나고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을 때의 우리의 언어는 행복하고 만족스럽고 기분 좋을 때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가?
류시화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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