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세상으로부터 왕따당하는 것 같은 프란시스의 그 기분, 나도 안다. 술자리에서 겉도는 것 같을 때, 그래서 눈치를 보다 먼저 가겠다고 일어섰는데 아무도 날 잡지 않을 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보려 모임이나 파티에 큰 맘 먹고 나갔는데 자기들끼리 너무 친해 보일 때, 겨우 끼어들면 다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이 눈치 없는 촌닭은 뭐야!’ 하는 표정을 지을 때, 클럽에서 ‘저 정도면 괜찮겠다’ 싶은 남자가 접근해 오기에 한껏 들떴는데 금세 다른 여자와 함께 나가 버려 닭 쫓던 개꼴이 되었을 때, 괜찮은 직업을 가진 멋지고 돈 많은 사람들 앞에서 위축되는 기분이 들 때, 모두가 약속이 있는 금요일 밤에 나만 혼자 쓸쓸히 집으로 돌아올 때, 당장 생활비는 떨어져 가는데 제대로 된 일자리는 안 구해질 때, 이 넓은 서울에 내 몸 하나 뉘일 집 한 채 구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절감할 때, 생일이 다가오는데 아무도 축하해 주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 때, 평생 이렇게 살다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더 불길한 예감이 들 때.
20대 때 종종 우리는 사람이고 싶은데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내 침대가 우주의 블랙홀에 연결되어 있어서 그 위에 누우면 한없이 아득한 곳으로 꺼질 것 같은 기분. 무엇도 될 수 없고 무엇도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기분. 그럴 때 프란시스와 친구들이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위로란 고작 이런 것이다. “머리를 대고 침대에 누워 봐. 그리고 한쪽 발은 바닥에 놓고. 그럼 기분이 나아져.”
그러니 20대가 바랄 수 있는 행복이란 결국 ‘확실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때는 불확실한 것들 투성이였기 때문에 계시와도 같은 운명적인 사건이 일어나서 내 인생이 조금이라도 확실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연애든, 우정이든, 인도에 가는 것이든,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것이든 뭐든 나를 블랙홀에서 건져 올려 주기만을 바랐다. 프란시스 역시 마찬가지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제 30대가 된 나는 20대의 불안한 프란시스에게 속삭여 주고 싶다. 그 나이에는 원래 그런 거라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맘껏 부딪치라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세상에 자기만의 조그만 자리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나이가 든다고 해서 특별히 확실해지는 건 없다. 계속되는 불안함과 막막함에 맞서 싸워야 한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나는 이걸 못하고 저걸 잘해. 나는 이걸 좋아하고 저걸 좋아해. ‘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들을 하느라 급급한 대신에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집중할 줄 알게 되는 것이다.
한수희,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내 생각
★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