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편견이 무서운 것은 그와 같은 맹목성 때문이다. 어찌 보면 편견은 인간이 가장 원하는 어떤 상태를 만들어준다. 복잡하게 고민할 것 없고, 자신을 억누르거나 타인을 이해하는 수고 없이, 가장 단순하게 즉각적으로 느끼고 행동할 수 있는 최고의 편리함을 제공한다. 언제나 진실은 구체적이고 저마다 다르고 복합적이며 다층적이지만, 편견은 추상적이고 단순하고 타자를 매우 손쉽게 동질화한다. 나아가 그렇게 분류해낸 타자들에게 가장 원초적인 차원의 감정을 부여한다. 그 감정은 인간 내부에서 그 무엇보다 효과적으로 반응하도록 설계된 혐오감이다. 독성이 있는 식물이나 썩은 음식,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보유한 생물을 보고 즉각적으로 꺼리고 배제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생물학적 ‘혐오감’을 정신적 관념인 ‘편견’과 완전히 결탁시켜 다른 인간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편견에 물든 사람은 다른 모든 이성적 판단을 잃어버린 채, 그 분류된 타자를 박멸하려고 한다. 그렇기에 배제는 언제나 이성을 뛰어넘어 있다. 그것은 차라리 우리의 본능을 전면화시켜 우리 스스로 야생으로 돌아가게끔 유도한다. 정글에서 독이 있는 개구리나 지네를 발견했을 때와 같은 순간으로 인간을 퇴행시킨다. 그래서 편견은 문명 안의 야생이며, 야생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측면의 부활인 셈이다. 편견에 집착하는 것은 악마가 되고자 하는 것, 악마가 되어가는 일을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악마성은 너무나 강렬하고 손쉬워서, 인간이란 매 시대 그 악마를 소환하려는 열망에 휩싸이는 것만 같다.
정지우,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내 생각
★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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