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매필8기]23일차. 보통 사람이란 평균 점수처럼 어떤 집단을 대표하고 싶어 하는 가공의 숫자일 뿐, 실지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본문
얼마 전에 어떤 일간지에서 평균치의 한국 사람을 계산해서 거기 꼭 들어맞는 사람을 찾아내서 '한국의 보통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크게 보도한 적이 있다. 나는 그가 크게 웃고 있는 낙천적이고 건강한 얼굴을 보고 내가 오랫동안 찾고 있는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반가움과 친숙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가 갖춘 보통 사람의 조건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보통 사람의 조건하곤 얼토당토않은 것이었다. 그의 생활 정도나 학벌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보통 사람을 훨씬 밑돌았지만 그는 보통 이상 날카로운 사회적 안목과 비판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보통 사람 다운 점이 딱 하나 있다면 그것은 큰 욕심 안 부리고 열심히 노력해서 지금보다 좀더 잘살고 자식은 자기보다 더 많이 가르치고 싶다는 건전하고 소박한 꿈이었다. 그러나 한편 냉정히 생각해보면 큰 욕심 안 부리고 노력한 것만큼만 잘살아보겠다는 게 과연 보통 사람의 경지일까? 보통 사람이란 좌절한 욕망을 한 장의 올림픽복권에 걸고 일주일 동안 행복하고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이 아닐까? 보통 사람의 숨은 허욕이 없다면 주택 복권이나 올림픽복권이 그렇게 큰 이익을 올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 풍진세상에서 노력한 만큼만 잘살기를 바라고 딴 욕심이 없다면 그건 보통 사람을 훨씬 넘은 성인의 경지이다.
그럼 진짜 보통 사람은 어디 있는 것일까? 과연 있기는 있는 것일까? 보통 사람이란 평균 점수처럼 어떤 집 단을 대표하고 싶어 하는 가공의 숫자일 뿐, 실지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크게는 안 바라요. 그저 보통 사람이면 돼요.”
가장 겸손한 척 가장 욕심 없는 척 이렇게 말했지만 실은 얼마나 큰 욕심을 부렸었는지 모른다. 욕심 안 부린다는 말처럼 앙큼한 위선은 없다는 것도 내 경험으로 알 것 같다. 아마 나의 가장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가장 까다로운 조건만 내세워 자식들의 배우자를 골랐더라면 생전 시집 장가 못 보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제 마음에 드는 짝을 제각기 찾아내서 부모의 승낙을 받고 슬하를 떠났으니 큰 효도한 셈이다. 아직도 보내야 할 자식이 남아 있긴 하지만 보통 사람을 찾는 일은 그만두기로 한 지 오래다.
서른둘이 되도록 시집을 안 가고 있는 딸을 둔 내 친구는 보는 사람마다 붙들고 중매 서라고 조르는 버릇이 있다. "바지만 입었으면 돼.” 그게 내 친구의 사윗감에 대한 간단명료한 조건이다. 그러나 서른두 살 먹은 그 처녀는 치마 입은 총각이나 나타나면 시집을 갈까, 바지 입은 총각들한테는 흥미 없다는 낙천주의자다. 나는 그렇게 초조해하는 친구보다 그의 딸의 느긋한 여유가 한 결 보기 좋아서 친구한테, 그 애는 결혼 안 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애니 제발 좀 내버려두라고 충고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친구는 벌컥 화를 내면서 보통 사람들이 다 하는 사람 노릇도 못 하고 나서 행복 불행 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렇담 내 친구는 행불행 이전의 최소한 사람 노릇을 보통 사람의 전형으로 삼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보통 사람과도, 신문사에서 뽑은 보통 사람과도 다른 또 하나의 보통 사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보통 사람의 실체를 파악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러다가는 내가 보통 사람을 좋아한다는 게 정말인지조차 의심스러워 진다. 모르겠다. 지금 누가 나에게 보통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이마에 뿔만 안 달리면 다 보통 사람이라고 대답하겠다.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내 생각
보통사람에 대한 박완서님의 글을 읽으니, 에세이집을 전부다 읽고싶다. 그분의 단편소설집을 단하나 읽어본 나로선 그분의 글이 너무나 읽고싶고 궁금하다♡^^
곱씹어보고싶고 나만의 에세이도 쓰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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