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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매필8기]11일차.적의에 오래 노출되고도 괜찮은 사람은 여기든 거기든 없을 거야. <옥상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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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사이다 2021. 4. 11.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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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아래 칸에서 재료를 꺼내고 있을 때, 평소 나를 싫어하던 선배가 위 칸을 갑자기 여는 바람에 날카로운 모서리에 찍혀 이마를 다쳤어. 누군가 급히 건넨 냅킨으로 찢어진 부위를 누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울고 말았어. 조용히 운 것도 아냐. 왈칵 울었어. 서른명이 복작거리는 주방에서 소리를 죽이지 않고, 겉껍질이 떨어져나가 속살이 드러난 크루아상처럼 서러웠어. 그날만은 그 선배도 잘해주었지만, 문을 벌컥 여는 행동의 저 바닥에는 분명 적의가 있었다고 생각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말이야. 금방 떠나버릴 외국인, 무책임한 외국인, 질 나쁜 외국인, 그런 취급을 받으면 서도 언제나 모른 척 웃고 있었으니까. 진짜로 웃지 않는 걸 들켜 버려서 더 미움받았으니까.

적의에 대해 생각해. 적의에 오래 노출되고도 괜찮은 사람은 여기든 거기든 없을 거야. 그 나쁜 입자들을 씻어낼 수 있는 샤워 비슷한 게 있다면 좋겠다고도 생각해. 간편한 에어샤워 같은 것.
울면서 만든 베리타르트의 맛을 두고 컴플레인이 걸려오진 않았어. 슈거파우더로는 거의 모든 걸 덮을 수 있지. 사람들의, 관계의 가장 저열하고 싫은 부분까지도 말이야. 그리고 그날 퇴근하면서 너를 떠올렸어. 내가 다친 이마의 그 부분은 언젠가 네 얼굴에 무지개가 맺혔던 부분.

내가 너를 떠올릴 때, 항상 너의 옆 이마엔 무지개가 맺혀 있어. 두장의 유리가 맞닿은 틈이 프리즘처럼 무지개를 만들어냈지. 학교 앞의 별로 예쁘지도 않은 까페였는데 유리창이 가끔 그렇게 재주를 부렸어. 관자놀이에 무지개가 있다고 내가 말하자, 너는 아주 조심스럽게 눈을 옆으로 굴렸어. 마치 그러면 볼 수 있을 것처럼. 그러지 않으면 무지개가 사라지고 말 것처럼. 사진을 찍어주고 싶었는데 몇년 전의 휴대폰 카메라엔 좀처럼 잡히지 않았어.

정세랑, <옥상에서 만나요>

★내 생각
상대를 적 이미지로 바라보는것.
상대가 나를 적 이미지로 바라보는 것.
둘다 슬픈일이다.
어제 공감대화에 함께 나눈 '적 이미지'와 연결되는 내용이 나와서 신기하고, 더 공감하게된다.
마셜 로젠버그의 <갈등의 세상에서 평화를 말하다>책은 읽고 또 읽어 내 인생 책으로 만들어야겠다.

★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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