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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독서] 22일차. 토지 1부 1권 제1편. 어둠의 발소리

토지 읽기(북마미 도토리 모임)

by 공감사이다 2021. 1. 6.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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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책을 읽고, 읽은 만큼 글을 씁니다.

<토지>1부 1권. 박경리.

 

최참판댁 늙은 종 내외인 바우할아범과 간난할멈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이 슬프고 아려왔다. 얼마전 할아버지를 하늘로 보내드려서 더 죽음이 가깝게 느껴진다. 삶과 죽음은 함께라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9장 '소식' 에서는 바우할아범이 죽고 난 후, 간난할멈이 생을 이어가는 모습, 사램이 기럽아서(사람이 그리워서) 나와서 두만네를 찾아가는 부분이 나온다. 경상도 출신인 나는 사투리가 대강 이해가 된다. 느낌으로 일단 이해하고 그래도 잘 안되는 부분만 찾아본다.

가죽과 뼈만 남은 모습은 밭 가에 한 그루 선 뽕나무, 봄이 와도 게 다리 모양으로 앙상히 꾸부러진 뽕나무의 마른 가쟁이 같았다. 햇볕을 못본 얼굴은 시래기 빛이었으며 빠지고 망가져서 겨우 조금 남은 반백의 머리는 어떻게 얹을 수도 쪽 져볼 수도 없어 그냥 마음대로 헝클어진 채였다. 칠순이 다 되었다고는 하지만 노쇠보다 병고가 더한층 가차 없고 냉혹했던 것 같다. 한 번도 생산을 해 본 일이 없는 할멈은 아명을 붙여서 간난할멈인데 옛적에는 김서방댁이라고 불렀었다. 머리칼이 희어지면서 현재 김서방이 김서방이라는 칭호와 임무를 바우할아범한테서 물려받은 뒤 어느덧 늙은 종의 내외는 바우할아범 간난할멈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마로니에북스 p.160

요즘은 칠순이시면 건강하시고 정정하실 나이인데, 간난할멈은 일을 너무 많이하고, 앓는 병이 있어서 급속히 늙어간 것같다. 책에서 묘사된 간난할멈의 모습이 너무도 안타깝고 슬펐다.

옛날엔 환갑까지 살아도 오래살았다고 회갑잔치(환갑잔치)를 했을 정도이니, 시대가 정말 많이 변했구나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 장례식을 하고, 앨범 속에서 26년전 할아버지 할머니(두분은 나이가 같으시다) 회갑잔치 사진들을 가족들과 함께 들여다보며 같이 추억을 떠올렸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하고, 쓸쓸하실 우리 할머니, 우리 아빠, 엄마를 위해 기도하고 연락을 드리며 마음을 위로해드려야 겠다.

 

오늘은 토지, 땅, 그리고 자연에 대해 묘사된 부분을 노트에 필사해보았다.

솜뭉치 같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는 하늘은 더없이 평화스럽다. 들판을 오가는 농부들의 모습에서도, 강을 따라 흘러 내려가는 뗏목, 개천가에는 어미소를 따라다니는 송아지, 모든 것은 다 평화스럽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더 잃지 않으려는 농부들은 또한 아무것도 더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더 잃지 않으려는 자연과 더불어 이 한때는 평화스런 것이다.

마로니에북스 p.161

윤보과 김훈장의 대화가 정말 유쾌하고 재밌었는데, 김훈장이 문득 땅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음... 저기 보게나."
"예? 머가 있십니까?"
담뱃대로 가리키는 들판을 본다. 아침 안개가 서서히 걷혀지고 있었다.
"모두들 일을 하고 있지."
"예, 논갈이들 하고 있구만요."
"땅이란 고마운 거여."
"......?"
"기즉부 하며, 포즉양 하며, 욱즉추 하며, 한즉기는 인정통환야라 하나 땅이야 어디 그런가? 사시장철 변함없이 하늘의 뜻과 사람의 심덕을 기다리고 있네."
"그기이 무신 말씸입니까?"
"배가 고프면 먹여주는 자에게 빌붙고 배가 부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떠나가고 따뜻한 곳에는 모여들고 추운 곳은 버리는 게 세상의 인심이라 그 말일세."
윤보는 눈만 꿈벅꿈벅한다.
"멀리 가는가?"
"지 말입니까?"
김훈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주로 갑니다."

(중략)

"생원님은 아침부터 이슬 밟고 어디 다니오십니까?"
하고 (윤보는)능청스럽게 딴전을 피웠다. 주거니 받거니, 이 같은 수작은 이들에게는 처음이 아니다. 신분이 다르고 서로 늘 의견이 다르면서 이상하게 배짱이 맞는다고나 할까. 아니 서로 정이 통한다 해야 할 것 같다. 꾸짖는가 하면 놀림을 당하고 그러면서 이들 사이에는 미묘한 우애가 흐르고 있었다.

마로니에북스 p.178~180

나는 소설과 친하지 못하지만 토지가 너무 재밌고, 토지에 나오는 인물들이 좋아서 이번 세번째 읽기를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인물인 윤보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사이다처럼 시원해서 좋다. 

김훈장은 보수적인 양반이고, 하나뿐인 가족인 딸을 챙기기보다 세 아들을 하늘로 보낸 것을 슬퍼하며, 선영봉사를 어떻게 할것인가를 고민하는 면에서 답답한 면이 있지만, 지난번 토지를 읽으며 김훈장의 지혜로운 면모를 본 생각이 나서,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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