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성장은 끝없는 반복 과정이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될 때 ‘틀린’ 것에서 ‘옳은’ 것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틀린 것에서 약간 덜 틀린 것으로 나아간다. 또 다른 것을 알게 되면 약간 덜 틀린 것에서 그보다 약간 덜 틀린 것으로 나아간다. 이 과정이 반복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진리와 완성을 향해 나아가지만 실제로 거기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결정적인 ‘정답’을 구할 게 아니라, 오늘 틀린 점을 조금 깎아내 내일은 조금 덜 틀리고자 해야 한다.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삶이 ‘옳아야 한다’는 생각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탓에 오히려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다. 어떤 여성은 애인을 만들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집 밖으로 나가 사람을 만나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어떤 남성은 뼈 빠지게 일하며 자기는 승진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상사 앞에서 승진시켜달라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이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건, 꼭 실패가 두려워서 혹은 거절당하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다. 물론, 거절당하거나 실패하면 괴롭고 속상하다. 하지만 이들이 집착하는 건 ‘확실성’이다. 다시 말해 이미 오랫동안 자신의 삶에 의미를 가져다 준 가치를 의심하거나 놓아버리기가 겁나는 것이다. 위의 남성이 승진을 요구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업무 능력에 대한 본인의 믿음’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의 여성이 데이트를 하지 못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애써야 하는 상황’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성은 그 상황이 비참하다는 자신의 믿음을 맞닥뜨려야 하는 것이다. 차라리 아무도 내 매력을 몰라준다고 믿거나 아무도 내 재능을 몰라준다고 믿는 편이 훨씬 편하다. 실제로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고 확인하는 것보다는 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라리 확신에 안주하기를 택한다. ‘난 매력이 없으니까 할 수 없어.’ ‘상사가 어리석은데 어쩌겠어.’ 이렇게 믿으면 당장은 어느 정도 위안을 얻을 수 있지만, 결국엔 그 대가로 더 큰 행복과 성공을 놓치게 된다.
길게 보면 이건 형편없는 전략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거기에 매달리는 건 자기 생각이 옳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난 이미 알고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즉 이야기의 결말을 확신하는 것이다.
확신은 성장의 적이다.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까지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조차도 논쟁의 여지는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택하는 가치관이 필연적으로 불완전하다는 점을 받아들여야만 성장할 수 있다.
확실성을 추구할 게 아니라, 끊임없이 의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자신의 느낌과 믿음을 의심해야 한다. 확신을 추구하는 자세를 버린 뒤, 스스로 미래를 일구지 않는다면 내 앞날이 어떻게 될지 질문해야 한다. 항상 내가 옳기만을 바랄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틀렸는지를 따져 봐야 한다. 우리는 항상 틀리기 때문이다.
★필사
★내 생각
오늘의 글을 읽으며 뜨끔했다.
내가 옳기만을 바랄게 아니라, 내가 어디가 어떻게 틀렸는지 따져봐야겠다.
마크 맨슨의 말처럼, 나는 틀린 것에서 약간 틀린 것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하며 나는 성장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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