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매필10기] 27일차. 지독한 집순이에게 깃든 간절한 여행자의 영혼이라니, 모두가 어느 정도는 다른 자아를 데리고 살지만, 너의 경우엔 양쪽 다 유난이지.<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본문 여행이 끝나고, 다시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이야. 치앙마이 길거리 매대에서 신중하게 골라, 기세 좋게 흥정한 너의 날염 바지는 무채색의 겨울옷들 속에서 지나간 유행가처럼 펄 럭펄럭 노래하고 있어. 바지를 좀 갈아입고 올 걸 그랬나 머쓱해하는 순간, 여행 가방이 컨베이어 벨트에 모습을 드러내지. 반짝이던 모든 것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빛을 잃어가.평소에도 잘 할 수 있겠다 싶었던 반지도 부자연스럽고 대책 없는 취향으로 판명 나지. 보물이라도 될 것처럼 꽁꽁 챙겨온 기념품도 무거운 짐짝으로 취급받을 뿐이야. 모든 것에 '잊어라'라는 선고가 내려지지. 떡진 머리와 몽롱한 정신과 천근만근인 몸은 그 선고를 이행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야. 얼른 집에 가서 씻고 편하게 자고 싶다는 욕망만이 간절할 뿐이야.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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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6. 26. 2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