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아바매필11기] 30일차.

매일 필사하기

by 공감사이다 2021. 7. 30. 09:44

본문

본문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은 말했다. “다른 곳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나를 보는 것이 놀랍다. 왜냐하면 거기가 아니라 여기에, 다른 때가 아니라 현재여야 하는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은 자유와 존엄이 박탈당한 상태에서 태어난 다. 태어난 당사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세상에 태어나는 일은 스스로의 결정이 완전히 배제된, 전적으로 타율적인 사태다.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벌거벗겨지고, 씻겨지고, 볼이 잡아당겨지고, 신생아실에 무력하게 눕혀진다. 이렇게 시작된 자신의 삶 은, 건조하게 말하여, 부모의 성욕이 원인이 된 외인사태다.

태어난 이후의 삶은, 자유와 그에 기초한 존엄을 쟁취하기 위한 집요한 노력으로 상당 부분 채워진다. 양육자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대소변을 가리고자 하며, 보호자의 물적 지원으로부터 벗어나 각자의 생업을 통해 밥을 벌어먹고자 하며, 자기 심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각종 억압에 저항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일정한 심적, 물적 자원이 확보되면, 그 자원을 활용하여 자기 인생의 독특한 이야기를 쓴다.

모든 이야기에 끝이 있듯이, 인생에도 끝이 있다. 모든 이야기들이 결말에 의해 그 의미가 좌우되듯이, 인생의 의미도 죽음의 방식에 의해 의미가 좌우된다. 결말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동안 진행되어 온 사태의 의미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인간은 제대로 죽기 위해서 산다"는 말의 의미다.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 삶은 선택할 수 없지만 죽음은 선택할 수 있다. 인간 의 삶은 전적으로 자유와 존엄이 박탈당한 상태에서 시작되지만, 개개인은 자기 삶의 이야기를 조율 하여 존엄 어린 하나의 사태로 마무리하고자 노력 한다. 비록 우리의 탄생은 우연에 의해 씨 뿌려져 태어난 존재일지언정, 우리의 죽음은 그 존재를 돌 보고자 한 일생 동안의 지난한 노력이 만들어온 이야기의 결말이다. 스스로를 어찌할 도리 없는 지경에 그저 처박아버리기 위해 일생을 살아온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생전에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밝히는 이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일생 동안 직조해온 자기 인생의 결말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병석에서 탕진해버리기를 거부하는 마음이다. 비록 우연과 타율에 의해 이 세상에 던져졌지만, 자신의 삶을 사랑해온 사람이라면, 하나의 수동적인 유전자 운반체를 넘어, 자유와 존엄을 가진 존재로서 삶을 정리하고 싶은 것이다.

내 생각

필사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