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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다른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 인권의 출발('불편해도 괜찮아'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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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사이다 2020. 11. 27.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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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대화 강사과정의 필독서의 하나로 <불편해도 괜찮아>(창비,2010, 김두식 지음) 를 읽었다. 처음에는 저자의 가족이야기, 딸과의 관계 등의 이야기로 술술 읽혔다. 성소수자 인권, 여성, 장애인, 노동자의 인권 등을 읽어가는데 내가 몰랐던 역사와 현실의 모습이 너무도 많아서 마음이 무겁고 불편해졌다.

저자는 제목에서 처럼, "불편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책머리에'(서문)의 제목은 "새로운 불편을 느끼기 위하여" 이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이렇게 느낀다.

'아, 내가(독자들이) 새로운 불편함을 느껴보라는 거구나. 그 새로운 불편함도 '나와 다름'으로 인한 것이지, 그 불편함도 괜찮다고 저자는 말해주고 싶은거구나.'

 

이렇게 저자는 '다름'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말한다. 

(p.60)
(동성애에 대해 불편하고 충격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역시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다름에 따른 불편함 자체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 다름 또는 불편함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습니다.

우리는 '다름'을 받아들이고 함께 지혜롭게 살 수 있는 태도를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인권의 역사를 알아야겠고, 우리 주변의 다양한 사람들과 배움을 같이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똑같은 사람임을, 피부색, 성적지향, 장애의 유무 등이 '그냥' '다르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 좋겠다. 나는 이 책을 지금이라도 만나게 된 것에 감사하고, 내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경험하게 되고 배우게 되어 시각이 넓어져 가고있음에 감사하다.

 

저자는 동성애를 경쾌하고 다룬 미국의 드라마(시트콤) 「윌과 그레이스」(1998년~2006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미드의 즐거움을 조금 맛 본 터라, 이 드라마를 나중에 시즌 하나라도 보고싶은 마음이다. 

(p.68)
미국 드라마 「윌과 그레이스」는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라, '벽장을 깨고 나와야 하는 것은 게이들뿐만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성정체성에 관한 뛰어난 교과서입니다. 물론 이 드라마의 성공이 게이 정체성의 핵심인 섹스를 피해감으로써 가능했다는 비판도 따로 기록해둘 필요는 있겠지만요.

나는 김두식님의 이 책을 읽으며 인권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좋은 점이고, 두번째는 영화와 드마라를 다양하게 알려주셔서 보고싶은 영화,드라마 목록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드라마를 즐기지는 않아서 가끔 아주 좋아하는 드라마가 생기면 정주행을 하는 편이고, 영화는 좋아하지만 자주 보진 못하고있다. 가끔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거나 집에서 시간을 내어 혼자 보거나 신랑과 보려고 할때, 어떤 영화는 '와, 보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지만 '아, 다른거 볼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도 많았다.

이 책을 읽고 영화와 드라마를 보는 방법을 정해보았다. 혼자 감상한다면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영화, 드라마를 보고 느낀점을 기록해야겠다. 또 신랑과 아이들, 또는 친구와 함께 본다면, 같이 본 사람들과 느낌(또는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대화와 다과의 시간"을 따로 정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영화, 드라마를 보는 눈도 더 폭넓고 고민해 볼 수 있는 것으로 찾아보고 싶다. 저자가 인권의 관점에서 영화와 드라마를 보는 시선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존중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콘텐츠의 시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내가 관심있고 좋아하는 영상들(영화, 드라마, 기타 유튜브 영상 등)을 하나씩 감상하고 기록도 하며, 좋은 컨텐츠를 찾아서 배우는 노력을 해야겠다.  

 

제1장 "네 멋대로 해라(청소년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p.24)
부모라는 '직업'에 필요한 것은 자녀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이지, 기대나 닦달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p.26)
외국에서는 멀쩡한데 한국에만 돌아오면 '지랄병'이 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사회가 정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사회 전체가 미쳐 돌아가는데 아이만 정상이기를 바라는 것이 오히려 이상합니다.

(p.31)
그런데 그런 (아이들을 명문학교로 진학시키는)성공사례들의 범람 속에서 평범한 아이들은 숨 막혀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중생활'을 하는 부모의 영혼도 함께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p.41)
그런데도 사람들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애어른들에게 "인생이 걸린 일이니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말합니다. 말은 쉽죠. 하지만 아무 정보 없이, 수험 준비 말고는 인생다운 인생을 살아본 경험도 없이, 어떻게 '신중한'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까?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p.42)
공부의 이유를 알고 나면 공부가 훨씬 쉽고 편해집니다. 중고생들에게 공부를 막는 최대장벽은 '왜 공부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이유를 억지로 알려줄 방법은 없습니다. 그걸 억지로 알려주려다보니 애들이 자꾸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것입니다.

이 책의 앞부분인 제1장을 읽으며 술술 읽혔다고 말했지만, 사실 위 글들을 읽으며 마음이 뜨끔하고,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몇년간 교사로 일하며 바라본 학교현장은 나의 희망과는 거리가 멀었고,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들,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에도 나는 내 능력부족과 한계를 느꼈다. 더 시도해보지 못한 점은 후회로 계속 남을 것이다. 후회없이 사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이겠지만, 난 후회하며 살아도 괜찮다. 지금 자녀 둘이 있는 나는 아이들을 밥과 놀이로 키운다고 생각하는데, 이 아이들은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나를 성장시켜준다. 그 아이만의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고, 말과 몸짓으로 위로와 행복을 준다. 나는 서른이 넘도록 놓치고 살았던 '공감대화'를 이제는 꾸준히 배우고, 나의 대화습관이 공감대화쪽으로 기울도록 평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공감대화의 중요성과 즐거움을 나누는 강사가 되고 싶다.

(p.125)
1995년 처음 우리나라에 상영되었던 「안토니아스 라인」은 놀랍게도 2009년 봄에 다시 영화관에 걸리는 저력을 과시합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저는 「가족의 탄생」에도 다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가족의 탄생」이 다시 영화관에 걸리고 200만명쯤 함께 본 다음, 가족의 미래를 함께 토론할 수 있다면 얼마라 좋을까요. 가부장제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에 의해 유지되고 책임지는 그런 새로운 가족의 시대가 조금은 일찍 열리지 않을까요.

나는 영화 「가족의 탄생」을 아직 보지 못했다. '가족의 미래를 함께 토론"해 볼 수 있다니, 신나는 일이고 행복한 일이다. 나도 저자의 말처럼 이렇게 가족의 의미와 현재, 미래에 대한 영화을 함께 보고 토론하고 싶다. 현대 사회에서는 가족의 역할이 축소되고 다양한 가정환경이 생김으로써 사회 역할의 비중이 커져가고 있다고 말한다.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가족을 한정짓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족유형들을 모두 인정하면서 우리가 '다름'에서 배우고 서로 존중한다면 가족은 여전히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회복지자격증 취득을 위해 공부하고 있는 중이고 공감대화, 인권에 대해서도 계속 공부중이다. 다양한 가족유형은 이성애부모,이성애 가족, 동성애가족, 한부모가족, 다문화가족, 조손가족, 또는 함께사는 공동체 등이 있다고 생각한다.   

(p1.49)
거기다가 이 영화에서는 공주의 환상이 너무 자주 등장합니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 종두와 장난치는 환상, 종두가 일하는 카센터에서 중국음식을 시켜먹다가 놀리는 환상, 고가도로 위헤서 춤을 추거나 오아시스 그림 속의 인물들과 함께 춤을 추는 환상, 지하철역에서 종두를 휠체어에 태우는 환상 등등. 저무 자주 전환되는 영상이 영화의 흐름을 방해할 정도로 환상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환상의 연결선상에서 두 사람은 성관계를 맺습니다.

(p.150)
공주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주는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고, 충분히 정상이고, 충분히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굳이 환상 장면을 덧붙일 필요는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사족이 돼버린 환상 장면들은 그저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이라면 이런 꿈을 꾸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편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철저하게 남성적인 시선, 철저하게 비장애인의 입장으로 만든 장애인영화일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 「오아시스」를 본 적이 있다. 예전에 보아서 다는 기억못하지만, 환상 장면이 많아서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비장애인이었는데, 사고로 장애인이 된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보니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우리는 장애인을 '장애인 모습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불쌍한 사람' '도와주어야할 사람' '비장애인을 부러워할 거라는 생각' 등의 편견을 갖고 있는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p.193)
저는 우리나라에도 「빌리 엘리어트」처럼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영화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노동자 시각의 극영화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가 공연된다고 하지만, 보나마나 가격이 너무 비쌀 것이기 때문에 진짜 노동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입니다. 거기다가 아무리 번안을 잘해도 그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영국 노동자들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밥 꽃 양」과 「외박」의 정신을 이어받으면서도 남녀노소가 함께 웃고함께 눈물 흘릴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어줄 감독은 어디에 계신가요? 하긴 영화만들 돈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생각한다면 저의 이런 소망은 처음부터 부질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2015년 방영된 JTBC <송곳>을 떠올렸다. 웹툰을 원작으로 했고 많은 사랑도 받았다고 한다. 기사들과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아직 이 드라마를 보진 못했다. 이 드라마와 저자가 말한 다큐멘터리 영화  「밥 꽃 양」과 「외박」도 꼭 보고싶다. 앞으로도 노동자를 다룬 영화, 드라마가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제9장, '그냥 다 죽이면 간단하지 않나요?'(차별의 종착역, 제노싸이드)를 읽으면서 너무 무섭고, 몰랐던 내용들이라 역사와 관련 자료(영화 등)을 찾아보고 더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제노사이드(genocide)는 국민, 인종, 민족, 종교 따위의 차이로 집단을 박해하고 살해하는 행위이며, 1944년에 법률학자 렘킨(Lemkin, R.)이 제안하여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라고 한다.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읽고 알아두기 위해 링크를 남겨둔다. namu.wiki/w/%EC%A0%9C%EB%85%B8%EC%82%AC%EC%9D%B4%EB%93%9C

 

제노사이드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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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u.wiki

(p.355)
인류의 오래된 지혜가 집적된 성경이, 세상을 움직이는 '정사(政事: 정치상의 일)와 권세들'에 대해 끊임없이 경계하는 것도 이런 위험성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정작 무서워해야 하는 것은 공포영화 속의 괴물이나 귀신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을 학살의 손발로 만드는 진짜 괴물 또는 시스템입니다.

유태인 등을 학살했던 사건인 홀로코스트가 떠오르고, <안네의 일기>도 떠오른다. 너무 무섭지만 알아야할 역사이고 진실이라 생각한다. 저자가 소개한 영화 「해마다 4월이면」(Sometimes in April, 2005)도 꼭 보고싶다.

책을 읽으며 매우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인권에 대해서 고민하고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다시 이책을 읽거나 인권관련 책과 영상도 함께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