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휘 光輝
명사
1.
환하고 아름답게 눈이 부심. 또는 그 빛.
2.
눈부시게 훌륭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명사
1. 불꽃, 불똥
A shower of sparks flew up the chimney.
수많은 불꽃이 굴뚝 위로 날아 올라갔다.
2. (전류의) 스파크; (내연기관의) 발화 장치
sparks from a faulty light switch
결함이 있는 전등 스위치에서 일어난 스파크
3. (특정한 특질감정의) 아주 조금[희미한 흔적]
a spark of hope
한 가닥 희미한 희망
문형
~ of sth
유의어
glimmer
4. (재기열정 등의) 번뜩임
As a writer he seemed to lack creative spark.
작가로서의 그는 창의적인 번뜩임이 부족한 것 같았다.
5. (특히 문제폭력 등의) 기폭제
the sparks of revolution
혁명의 기폭제
6. (사람들 사이의 감정적인) 불꽃
Sparks flew at the meeting.
그 회의에서는 (논의가) 불꽃이 튀었다.
(146쪽)
반면 우리는 인간의 아이들이 새끼 돼지보다 특별하다는 생각이 생태적 세력 균형보다 더 본질적인 뭔가를 반영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인간의 생명이 어떤 근본적인 차원에서 실제로 우월하다고 믿으려 한다. 우리 사피엔스들은 우리가 마법 같은 자질을 가졌다고 스스로 세뇌한다.
그 자질은 우리의 막강한 힘을 설명해줄 뿐 아니라 특별한 지위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한다.
인간만이 가진 이 특별한 광휘는 과연 무엇일까?
(148~149쪽)
그런데 왜 진화론에는 이렇듯 격렬한 반대를 일으키면서도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할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까?
(중략)
반면 다윈은 우리에게서 영혼을 박탈했다. 당신이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것이 영혼은 없다는 이야기임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것은 독실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도뿐 아니라 세속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충격적인 이야기이다. 인간은, 비록 분명한 종교적 교의를 지지하지 않더라도, 저마다 일생 동안 변하지 않고 자신이 죽어도 그대로인 영원한 개인적 본질을 가졌다고 믿고 싶어 한다.
(151쪽)
진화론이 영혼의 개념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적어도 우리가 말하는 '영혼'이 분리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되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면 말이다. 그런 실체는 단계적 진화를 통해 생길 수 없다. 자연선택을 통해 인간의 눈이 만들어진 것은 눈이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혼에는 부분이 없다. 만일 사피엔스의 영혼이 에렉투스의 영혼에서 단계적으로 진화했다면 그 단계들은 정확히 무엇이었을까? 사피엔스 영혼의 어떤 부분이 에렉투스보다 더 발달했을까? 하지만 영혼에는 부분이 없다.
(152쪽)
따라서 영혼의 존재는 진화론과 아귀가 맞지 않는다. 진화는 변화를 뜻하며, 영원히 지속되는 실체를 생산하지 못한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지닌 것 가운데 인간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것은 유전지이고, 유전자 분자는 '영원한 것'이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돌연변이의 운반체이다.
이런 사실은 영혼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진화론을 거부할 수많은 사람들에게 끔찍한 일이다.
(206~207쪽)
돈이 상호주관적 실재임은 비교적 받아들이기 쉽다. 또한 고대 그리스 신, 악한 제국, 외래문화의 가치가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꺼이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 신, 우리 나라, 우리의 가치가 허구라는 것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이 어떤 객관적 의미를 지니고, 자신의 희생이 머릿속에서 지어낸 이야기보다 중요한 뭔가를 위한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사실 사람의 인생은 그들이 서로에게 말하는 이야기의 그물망 안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많은 사람들이 공동의 이야기망을 함께 짤 때 의미가 생겨난다. 왜 교회에서 결혼하고, 라마단에 금식하고, 선거일에 투표하는 것 같은 특정 행동이 의미가 있을까? 내 부모는 물론 형제, 이웃, 이웃도시 사람들, 심지어 먼 나라 사람들조차 그것이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이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의미있는 일로 생각할까? 그들의 친구와 이웃들도 같은 견해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서로의 믿음을 강화하면서 자기 영속적인 고리를 만든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믿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없을 때까지 상호 확증을 거듭하며 의미의 그물망을 팽팽하게 만든다.
그런데 몇십 년, 몇백 년이 지나면 의미의 그물망이 풀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그물망이 만들어진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의 그물망들이 생기고 풀리는 것을 지켜보고, 한 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였던 것이 후손에 이르러 완전히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187쪽)
돌촉을 붙인 창으로 매머드를 사냥하던 인류가 2만 년만인 우주선으로 태양계를 탐사하게 된 것은 더 능란한 손재주나 더 큰 뇌(실제로 우리 뇌가 그들의 뇌보다 더 작은 듯하다) 덕분이 아니었다.
우리가 세계를 정복한 주요 요인은 여럿이 소통하는 능력이었다. 오늘날 인간이 이 행성을 지배한 것은 인간 개인이 침팬지보다 늑대보다 훨씬 더 영리하고 손놀림이 민첩해서가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가 여럿이서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종이기 때문이다. 지능과 도구 제작 능력도 분명 중요했다. 하지만 여럿이서 유연하게 협력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정교한 뇌와 능란한 손으로 우라늄 원소가 아니라 아직도 부싯돌을 쪼개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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